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맡은 역할에 따른 책임이 있다.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고 공동의 목표에 기여해야 하며, 전문가라면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직업의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이런 역할은 개인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행동할 수 없게 한다. 직업생활에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의무와 기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직업적 역할이 개인의 판단을 완전히 대신하지는 않는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행동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충돌하거나, 맡은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도 생긴다. 이때 직업적 역할과 개인의 양심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다.
직업적 역할은 개인에게 새로운 책임을 더한다
사람은 직업을 갖기 전에도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직업을 갖게 되면 여기에 직업적 역할에서 생기는 책임이 더해진다.
고객의 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는 정보를 적절하게 보호할 책임이 생기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관리자에게는 주어진 권한을 공정하게 행사할 책임이 생긴다. 전문가에게는 자신의 지식과 판단을 상대방에게 책임 있게 제공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이러한 책임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없었던 것일 수 있다.
직업적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일을 통해 개인의 행동 범위와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이 고객의 재산이나 안전에 영향을 미치거나 동료의 업무와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개인적인 선호만으로 행동하기 어려워진다.
직업윤리는 개인에게 자신의 가치만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역할의 목적과 그 역할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하도록 한다.
양심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
직업적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규정에 어긋나지 않고 상사의 지시에도 따랐지만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이런 성찰에는 개인의 양심이 작용한다.
양심은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비추어 판단과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 직업생활에서도 양심은 조직의 목표나 업무 절차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요구된 정보만 전달했다면 규정상 필요한 업무는 수행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중요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선택하게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면 자신의 행동을 다시 검토하게 된다.
이러한 불편함을 곧바로 옳고 그름의 증거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판단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계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양심만으로 직업적 문제를 결정할 수도 없다
자신의 양심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직업적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양심 역시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에게 불편한 업무라는 이유로 그것을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개인적인 신념과 직업적 책임을 혼동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조직에 익숙해지면서 문제가 있는 행동을 더 이상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양심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느낌 자체에서 판단을 끝내기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관련된 사실이 무엇인지, 자신의 역할에는 어떤 책임이 있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른 선택이 가능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양심은 직업적 판단을 대신하는 최종적인 답이라기보다 자신의 행동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역할과 양심의 충돌은 판단을 요구한다
직업적 역할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을 기계적으로 우선하면 현실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직업적 역할을 이유로 자신의 판단을 모두 포기해서도 곤란하고, 자신의 확신만을 근거로 역할에 따른 책임을 가볍게 여겨서도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맡은 역할의 목적과 책임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조직의 요구가 실제로 자신의 직업적 책임과 충돌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적인 선호와 다른 것인지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직업적 역할과 양심이 충돌할 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과 가치, 사실과 영향을 함께 살펴 책임 있게 판단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직업생활에서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아 일할 때에는 자신의 판단과 지시를 따를 책임 사이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 에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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