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가정과 학교에도 규칙이 있고, 직장과 기업에도 규칙이 있다. 조직에는 업무 규정과 절차가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기 위해 지켜야 할 행동 기준도 있다.
규칙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알려 준다. 윤리도 우리의 행동에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규칙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윤리와 규칙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규칙이 일정한 상황에서 지켜야 할 행동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한 것이라면, 윤리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판단하게 하는 기준이다.
규칙은 행동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고 일하려면 공통의 행동 기준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과 방식대로만 행동한다면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게 되고 갈등이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규칙은 이러한 문제를 줄여 준다. 학교는 학생이 지켜야 할 생활 규칙을 정하고, 기업은 직원이 따라야 할 업무 규정을 만든다. 공장에서는 안전수칙을 정하고, 조직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승인 절차를 마련한다.
규칙이 있으면 구성원은 어떤 행동이 요구되는지 알 수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안전, 공정성, 정보 보호처럼 여러 사람의 권리와 이해관계가 연결된 문제에서는 규칙이 중요하다. 규칙은 추상적인 가치와 원칙을 구체적인 행동의 기준으로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다.
윤리는 규칙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을 판단한다
규칙은 특정한 상황에서 해야 할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반면 윤리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행동의 목적과 이유,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예상할 수 있는 결과와 책임 등을 함께 고려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 고객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규칙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직원은 규칙에 정해진 정보를 모두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이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했다면 규칙을 형식적으로 준수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윤리적 판단은 이때 규칙의 문구뿐 아니라 그 규칙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살펴보게 한다.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목적이 고객의 합리적인 판단을 돕는 데 있다면, 단순히 정보를 전달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고, 윤리는 그 행동의 의미와 영향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규칙에는 목적이 있다
대부분의 규칙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다. 안전수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보 보호 규칙은 중요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해충돌 규칙은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공정한 판단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규칙의 문구뿐 아니라 목적도 알아야 한다. 규칙의 문구만 따르고 목적을 무시하면 형식적으로는 규칙을 지키면서도 규칙이 보호하려는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해진 승인 절차를 모두 거쳤더라도 의사결정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면 승인 절차가 만들어진 목적을 제대로 지켰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규칙의 목적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정해진 절차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절차에는 여러 사람이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권한의 남용을 막으며, 중요한 결정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칙의 문구와 목적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규칙을 책임 있게 지킨다는 것은 정해진 기준을 따르면서 그 기준이 보호하려는 목적도 함께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규칙으로 정할 수는 없다
규칙이 중요하더라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미리 규정할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기존에 없던 업무가 생길 수 있다. 여러 규칙이 동시에 적용되면서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규칙을 만들 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규칙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는 없다. 기존 규칙이 보호하려는 가치와 목적을 살펴보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과 예상되는 결과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윤리는 규칙이 미리 답을 정해 놓지 못한 상황에서도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판단하도록 돕는다. 그렇다고 윤리적 판단이 규칙을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규칙에 문제가 있거나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이유를 확인하고, 가능한 경우 정해진 절차에 따라 예외를 검토하거나 규칙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리적 판단은 규칙을 벗어나기 위한 명분이 아니라 규칙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책임 있게 판단하기 위한 과정이다.
규칙도 다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규칙은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옳은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와 조직은 변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일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합리적이었던 규칙이 변화한 환경에서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규칙을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기도 한다. 특정한 구성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규칙을 만든 목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규칙이 충돌하면서 오히려 책임 있는 행동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규칙 자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규칙이 어떤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실제로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 특정한 사람에게 부당한 부담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변화한 환경에서도 적절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도 윤리적 판단이 필요하다. 윤리는 규칙을 적용하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더 나은 규칙을 만드는 데에도 필요하다.
조직은 규칙과 판단을 함께 필요로 한다
기업과 조직에는 많은 규칙이 있다. 업무 규정, 승인 절차, 회계 기준, 보안 정책, 행동강령, 이해충돌 규정, 내부통제 등은 구성원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규칙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하다.
규칙이 없다면 같은 문제를 사람마다 다르게 처리할 수 있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도 커진다. 구성원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기 어려워지고 책임의 범위도 불분명해질 수 있다.
따라서 윤리적인 조직일수록 규칙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가치와 원칙을 실제 행동으로 이어 가기 위해 적절한 규칙과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규칙만으로 윤리적인 조직을 만들 수도 없다. 현실의 모든 상황을 규칙으로 만들 수 없으며, 구성원이 규칙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채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따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에는 좋은 규칙과 책임 있는 판단이 함께 필요하다.
기업윤리는 규칙을 행동으로 연결한다
기업윤리에서 규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업이 정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정확한 정보 제공에 관한 기준을 만들 수 있다.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해충돌을 관리하는 규칙을 정할 수 있다.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위험을 확인하고 보고하는 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규칙을 통해 구체적인 행동 기준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규칙은 윤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를 조직 안에서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규칙을 만드는 것만으로 윤리가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이 규칙의 목적을 이해하고 실제 상황에서 책임 있게 적용해야 한다. 규칙에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문제가 생기면 기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영향, 예상할 수 있는 결과와 책임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규칙을 적용하면서 문제가 발견되면 규칙 자체를 개선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기업윤리는 결국 가치를 규칙으로 만들고, 규칙을 행동으로 옮기며, 그 결과를 다시 살펴 규칙과 행동을 개선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윤리와 규칙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윤리와 규칙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서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윤리적인 가치와 판단은 규칙을 통해 구체적인 행동 기준이 될 수 있고, 규칙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데 도움을 준다.
동시에 윤리는 규칙의 목적을 이해하고, 규칙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판단하며, 필요한 경우 규칙을 다시 검토하게 한다.
이를 도덕과 윤리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규칙은 일정한 상황에서 지켜야 할 행동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윤리는 그 규칙의 목적과 영향을 이해하여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판단하게 한다. 따라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규칙은 판단을 대신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윤리적 판단도 규칙을 마음대로 무시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규칙은 책임 있는 행동을 돕고, 윤리적 판단은 그 규칙을 제대로 적용하고 더 나은 규칙으로 발전시키도록 돕는다. 규칙과 윤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함께 이끈다. © 에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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