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책임이라는 말을 잘못이나 실패와 연결해서 생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 책임져야 하고, 잘못한 사람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책임은 문제가 발생한 뒤 잘못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나 처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임은 문제가 발생한 뒤에만 등장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선택할 때부터 책임의 문제와 마주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어떤 결과가 생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책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임은 윤리와 떼어놓기 어렵다.
윤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판단하는 문제라면, 책임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그 결과와 연결하는 문제다.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이 생긴다
책임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유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행동을 강요받았고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반대로 여러 선택지가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를 스스로 선택했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문제가 생긴다.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다른 선택은 가능했는지,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선택의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유가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면, 책임은 그 선택을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모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결과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의 정도를 판단하려면 선택의 자유뿐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무엇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어떤 권한과 역할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임은 자유 뒤에 따라붙는 부담이 아니다. 책임은 자유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적 조건이다.
책임은 선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책임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문제가 발생한 뒤를 생각한다. 사고가 발생하거나 회사가 손실을 입거나 고객이 피해를 보면 그제야 책임자를 찾는다. 물론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윤리에서 책임은 문제가 발생한 뒤 책임자를 찾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행동하기 전에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살펴보는 것도 책임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이 판매 중인 제품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자. 아직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고 고객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업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문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위험의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판매를 중단하거나 고객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하지 않는 것이 책임 있는 행동이다.
따라서 책임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선택하기 전에 가능한 결과를 고려하는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하고 행동한 뒤 그 결과에 대응하는 책임이다.
책임 있게 행동한다는 것은 문제가 생긴 다음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과 영향을 살펴보고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에서부터 책임은 시작된다.
결과만으로 책임을 판단할 수 없다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정도의 책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고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다. 충분히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했는데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그 선택과 행동까지 윤리적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심각한 위험을 알고도 무시했지만 우연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중요한 정보를 숨긴 채 의사결정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회사에 큰 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책임을 결과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책임을 판단할 때는 행동한 사람이 당시 가지고 있던 정보,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대안, 위험을 줄이기 위해 취한 조치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결국 책임은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가의 문제인 동시에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알고, 어떻게 판단하고, 무엇을 선택했는가의 문제다.
책임이 있다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르다
책임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임이 있다’는 것과 ‘책임을 진다’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책임이 있다는 것은 어떤 선택이나 행동의 결과와 자신이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결과에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사실과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피해가 있다면 가능한 범위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필요한 경우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며,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이나 제도를 바꿔야 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받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임의 중요한 목적은 이미 발생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이렇게 보면 책임은 과거의 행동만을 바라보는 개념이 아니다. 과거의 선택을 인정하고, 현재 필요한 행동을 하며, 미래의 행동을 바꾸는 것까지 책임의 영역에 들어간다. 책임은 과거의 선택을 현재의 행동과 미래의 변화로 연결한다.
책임이 나누어져도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많은 의사결정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기업에서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결정에 참여한다. 한 사람이 자료를 만들고 다른 사람이 검토한다. 관리자가 승인하고 또 다른 부서가 실행한다. 외부 전문가나 협력업체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하나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의 소재도 복잡해진다. 최종 결정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시받은 일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에서 결정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조직에서는 책임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책임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과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것은 다르다.
각자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 문제를 발견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조직에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책임의 크기와 내용은 각자가 가진 권한, 역할, 정보 그리고 선택할 수 있었던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더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 정보를 의사결정에 반영할 책임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 영향력에 따른 책임도 커진다. 그래서 조직에서는 권한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
기업의 책임도 선택과 영향력에서 나온다
기업의 의사결정에는 책임의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업의 하나의 결정이 고객, 직원, 협력업체, 주주, 지역사회 등 많은 이해관계자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허용되고 기업에 이익이 되는 선택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거나 과도한 위험을 떠넘길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그 피해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지, 위험을 줄일 방법은 없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뒤에는 그 결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책임의 범위에 포함된다.
그렇다고 기업이 자신의 활동과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의 책임 역시 기업이 가진 권한과 정보, 선택 가능성, 영향력 그리고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가져올 영향을 합리적으로 살펴보고, 자신이 가진 권한과 영향력에 맞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윤리에서 책임이 중요한 이유다.
윤리에서 책임으로
우리는 자유롭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은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만들어 낸 결과는 책임과 연결된다.
자유, 윤리, 책임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자유는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윤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판단하게 하며, 책임은 그 선택과 행동을 그 결과와 연결한다.
그러나 책임은 이 과정의 마지막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사람은 선택하기 전부터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과 예상할 수 있는 결과를 살펴본다. 자신이 가진 정보와 권한을 바탕으로 가능한 대안을 검토하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한다.
선택한 뒤에도 책임은 계속된다.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받아들이고, 문제가 발생했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을 바꾼다.
윤리적 책임은 단순히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선택하기 전에 결과를 생각하고, 선택한 뒤에는 그 결과에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책임 있는 선택이며, 윤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 에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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