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난독증


부끄러움은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 하나입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죠. 그런데 우리는 타인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을 얼른 가리고, 당황해서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 손을 숨기기 급급하죠.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지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원인 때문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어떤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누구는 부끄러워하는데 누구는 전혀 개의치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두 살짜리 어린아이는 기저귀에 오줌을 싸지만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죠. 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긴장한 나머지 수업 시간에 바지에 오줌을 싸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아이는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심을 느끼고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상황은 똑같은데 서로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화장실이 아닌 친구들이 많은 교실에서 오줌을 싸는 것은 사회통념상 옳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죠.

부끄러움은 참 의미 있는 감정입니다. 슬픔, 기쁨, 분노는 어떤 현상을 통해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반면 부끄러움은 어떤 기준에 의해 느끼는 사회화된 감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또는 느끼지 않는 것이죠. 물론 부끄러움과 수치는 조금 다른 감정입니다.

남몰래 코를 후비다가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죠. 이것은 좀 더 직관적인 감정입니다. 수치심은 부끄러움보다 훨씬 사회화된 감정이에요. 상사의 뒷담화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상사가 듣고 있었다든가, 무단횡단을 하는데 누군가 “왜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아요?”라고 할 때 느끼는 감정이 수치심입니다.

이것은 사회규범이나, 법규 혹은 도덕적 원칙을 어겼을 때 느끼는 감정이죠. 다시 말하면 스스로 옳지 못한 일을 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그것도 타인이 지적했을 때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사회화된 감정입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어?”, “네가 거짓말했다고 그러던데”, “이봐요!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등 때론 누군가 확인하고 통제함으로써 수치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꼭 누군가 얘기해줘야만 지금 하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있을까요?

당신은 오랜만에 한적한 고속도로를 기분 좋게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마신 커피의 종이컵을 버리고 싶어요. 조금만 더 가면 휴게소가 나오지만 휴게소에 진입해서 주차하고 쓰레기통까지 걸어가기가 귀찮습니다. 그래서 결단(선택)을 내리죠. 차창 밖으로 종이컵을 휙 던져 버리기로 합니다. 이때 지나가는 차량이 창문을 내리고 당신에게 손가락질을 합니다.

당신은 어떤 감정은 느낄까요? ‘그깟 종이컵 하나 버렸다고 손가락질을 해? 그리고 자기가 나를 언제 봤다고 감히 손가락질이야?’라고 분노가 일까요? 아니면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구나. 내 생각이 짧았어. 앞으로는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할까요?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도 분노를 느끼는 것을 ‘부끄러움 난독증’이라고 표현합니다. 행동은 감정을 유발하고, 감정은 후속 행동을 유발합니다. 분노를 느꼈다면 그것을 표출하는 후속 행동으로 이어질 겁니다. 감정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어떻게든 표출되게 마련입니다.

특히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분노는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듯이 밖으로 발산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쓰레기 무단 투기라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자신에게 삿대질한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고,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감정을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김혜영 저자의 [이제 좋은 어른이 될 시간]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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